윤가은 감독의 신작 《세계의 주인》(2025) 은 크게 사건적인 영화는 아닙니다. 대신, 한 사람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미세한 균열과 그 균열 속에서 흔들리는 감정을 끝까지 따라가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.
적은 상영관에서 출발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15만 관객을 넘기며 2025년 독립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은,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‘개인적인 경험’을 건드렸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. 저도 주말에 이 영화를 보고 왔는데요.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그런 영화였습니다.
작품 정보
- 감독: 윤가은
- 주연: 서수빈, 장혜진
- 장르: 한국 독립 · 드라마
- 개봉: 2025년 10월 22일
질문 하나에서 시작된 균열
이 영화는 고등학생 ‘주인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. 어느 날 학교에서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서명 운동이 벌어지고,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하는 분위기 속에서 주인은 유일하게 서명을 거부합니다. 이 선택이 옳은지, 이기적인지는 영화가 쉽게 답해주지 않습니다. 대신 그 선택 이후에 벌어지는 시간들을 차분히 따라가게 합니다.
주인의 말은 조금씩 왜곡되어 퍼지고, 정체를 알 수 없는 쪽지가 등장하면서 학교 안의 공기는 서서히 달라집니다. 친구와의 관계는 미묘하게 어긋나고, 학교와 가족 안에서도 불안한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하죠.
이 영화의 인상적인 점은 갈등을 크게 키우지 않는 방식입니다. 자극적인 사건보다 인물의 표정과 침묵, 관계 사이의 미세한 흔들림을 통해 감정을 전합니다. 그래서 보는 내내 ‘누가 맞고 틀렸는지’보다는, 한 사람의 선택이 어떤 파문을 만들어내는지를 곱씹게 됩니다. 조용하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이야기,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선택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입니다. 이 글에서는 그런 영화의 인상과 여운을 차분히 정리해보려 합니다.

주인공 '이주인'의 복잡 미묘한 세계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연기 신예
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'이주인' 역할을 맡은 서수빈 배우의 연기였습니다. 주인공의 연기는 이 영화의 정서와 윤리를 지탱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. 화려하거나 감정선을 크게 드러내는 연기가 아니라, ‘버티는 얼굴’과 ‘침묵의 태도’로 인물을 완성해 나간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. 주인공은 집단의 흐름에 쉽게 편승하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도, 그것을 영웅적으로 주장하지 않습니다. 배우는 이 미묘한 지점을 정확히 짚어냅니다. 눈빛과 호흡, 몸의 긴장 정도만으로 확신과 불안, 고집과 흔들림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죠. 그래서 관객은 주인의 선택을 쉽게 옳다거나 틀렸다고 판단하지 못한 채, 그 감정의 결을 따라가게 됩니다.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감정을 ‘표현’하기보다 감정을 ‘억제한 상태로 유지하는 연기’입니다. 침묵이 길어질수록 인물의 내면은 더 또렷해지고, 작은 표정 변화 하나가 장면 전체의 긴장을 좌우합니다. 이는 윤가은 감독 특유의 연출—아이 혹은 청소년의 세계를 과장 없이, 그러나 잔인할 만큼 정확하게 포착하는 방식—과도 잘 맞물립니다.
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
이 영화는 옳고 그름을 단정하지 않고, 선택의 무게를 조용히 질문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. 집단의 분위기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지, 그 선택이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고립으로 이어지는지를 과장 없이 보여줍니다. 또한 윤가은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과, 서수빈 배우의 절제된 연기가 만나 일상의 작은 사건이 얼마나 큰 윤리적 질문이 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. 보고 난 뒤에도 “나라면 어땠을까”라는 생각이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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